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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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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안개바다 넘어 무엇이 보이는가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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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그림으로 세상읽기] 안개바다 넘어 무엇이 보이는가 – 세이프타임즈 … △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1818·캔버스에 유채·94.5×74.8㎝) c 함부르크 미술관. 때로는 뒷모습이 더 많은 의미를 전하기도 하는 법. 바위산 꼭대기에 우뚝 선 남자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산 정상에서 불고 있는 세찬 바람에 그의 짧은 금발이 흩날린다. 발 아래로 보이는 안개는 거센 파도처럼 하얗게 부서지며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듯 호기롭게 시각적 쾌감을 이끌어내고 있다.망망대해 같은 안개바다를 바라보며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는 지금 상당히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는 듯하다. 동양의 선비처럼 자연을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분명 느낌이 다르다.동양에서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을 바탕으로 서양프리드리히,메테르니히,방랑자,빈회의,빈체제,그림으로세상읽기,안개바다,뒷모습,자연합일,여백의미,독일낭만주의,민족주의,자유주의,노장사상,군사정권,카를스바트선언,부르셴샤프트,저항,혁명적변화,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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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안개바다 넘어 무엇이 보이는가 - 세이프타임즈](http://www.safetimes.co.kr/news/photo/202010/87676_66013_230.jpg)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프리드리히 – 세상을 보는 다른 눈 “뷰스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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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 The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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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 The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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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누구인가
예술에 관한 특별한 취향이 있지는 않더라도,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눈에 익은 사람들이 많을 테다. 안개가 자욱해 높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 아득히 높은 산 위에서, 그 밑을 내려다보는 사내의 뒷모습이 남기는 인상은 그만큼 장엄한 느낌을 남긴다. 지팡이 하나를 짚고서 한쪽 발을 다른 한쪽보다 높게 걸친 채로, 말 그대로 ‘안개의 바다’가 넓은 산등성이 사이를 꽉 채우는 장엄한 풍경을 굽어보는 남자의 모습은 적잖이 비범해 보이는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등을 돌린 채 수평선 너머 지는 노을이나, 무한히 펼쳐진듯한 바다, 안개 낀 산등성이, 항구 도시에 내려앉은 밤의 어스름 등, 숭고한 자태를 자아내는 자연물을 바라보는 인물의 뒷모습을 즐겨 그렸다. 물론 회화 속에서 그림 밖 관람자에게 등을 돌린 인물의 모습이 프리드리히 이전에 그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령 지오토 벽화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같은 회화들이 그 예다. 하지만, 이를 풍경화에 결부시켜 종교적 색채를 띠면서도 절제된 그림을 완성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렵다[1]. (https://en.m.wikipedia.org/wiki/Wanderer_above_the_Sea_of_Fog)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그런 그의 그림들 가운데서도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다른 그림들과 구별되는 배치 구조를 보여준다. 가령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와 같은 ‘등 돌린 사람’의 모티프를 사용한 <항구의 밤(자매들)>(이하 <밤>)은, 밤의 어스름이 내려앉은 항구를 바라보는 한 쌍의 등 돌린 자매를 그림의 하단부에 배치한다. <밤>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선은 화면을 채우는 사물의 밀도가 가장 높은 그림의 가운데를 향하며, 동시에 등을 돌린 채 항구를 바라보는 두 여성의 존재를 지각하게 된다. 이내 감상자는 자매의 시선을 좇아 다시 시선을 위로 진행시키며 뾰족이 솟은 고딕 구조물과 돛대들이 즐비한 항구의 정경을 파악하고 비로소 화면 안의 정경을 종합적으로 인지한다. 말하자면, <밤>에서 등을 돌린 인물은 풍경을 향하는 감상자의 시선을 안내하는 장치인 동시에, 풍경의 일부이기도 하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항구의 밤(자매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이하 <방랑자>)는 다르다. 등을 돌린 인물을 정중앙에 배치했다. 프리드리히의 ‘등 돌린 사람’ 가운데서도 ‘방랑자’처럼 화면의 정중앙을 차지하며 시선을 빼앗는 작품은 드물다. 안개 낀 산등성이의 풍경을 눈에 담으려다가도 감상자의 시선은 이내 방랑자의 등에 부딪히게 된다. 심심한 화면의 상단은 감상자가 곧 시선을 돌리게 하고, 하단은 남자를 지탱하는 바위가 채우고 있어, 자연스레 방랑자에게로 시선이 진행하게 된다. 측면으로 눈을 돌려도 방랑자를 양옆에서 지탱하는 듯한 바위산과 방랑자의 가슴에서 양옆으로 사선을 그리며 뻗어나가는 산 줄기를 따라 방랑자에게로 시선이 돌아오게 된다. 하단의 바위와 측면의 산 줄기가 그리는 사선으로 인해 화면의 무게 중심이 남자의 몸통을 향하며 방랑자의 시선보다 낮은 곳에 형성됨으로써, 방랑자가 그림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프리드리히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자연물의 숭고함’이라는 이념보다도 광활한 자연물을 굽어보는 남자의 위엄이 <방랑자>에서는 더 강조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방랑자>는 그의 다른 풍경화들보다도 훨씬 연극적이며 화가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방랑자는 <항구의 밤(자매들)>에서 보았던, 감상자의 시선을 안내하는 보조적 장치로서의 모티프가 아니라, 프리드리히가 특별히 강조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주인공인 셈이다.
방랑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작가인 프리드리히의 개인사적 맥락을 추적해보아야 할까? 물론, 엄격한 루터교 신자인 아버지를 둔 그의 가정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색채를 얼마간 설명할 수 있게 해줄지 모른다. 성장기에 그가 잇달아 겪은 어머니와 동생, 누이들의 죽음 역시, 인간의 능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자연의 초월적 힘에 대한 감정을 그의 내면에 심어주어 그의 회화의 주요한 테마가 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2]. 하지만 여전히 방랑자의 정체와 그가 상징하는 의미는 의문에 부쳐진다.
미술사학자인 Koerner는, 그의 정체에 대한 하나의 유력한 대답을 제시한다. 그림 속의 방랑자가 입고 있는 초록색의 옷은 자원 입대한 군인의 유니폼이며, 유니폼을 입고 있는 방랑자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나폴레옹에 대항해 동원한 포병대의 일원이라는 것이다[3]. 그렇다면 프리드리히가 살았던 시대의 거시적 맥락과 그 맥락 위에서의 프리드리히의 위치를 해석해볼 필요가 있겠다.
예술사적 흐름 속에서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 사조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위치지울 수 있다. 그는 낭만주의자로서 자연물이 주는 숭고의 심상을 탐닉했고 그래서 그의 그림은 ‘숭고회화’ 라고 불리운다. ‘숭고’라는 개념에는, 진즉 영국에서 유행한 숭고론의 흐름에서부터, 숭고를 미(美)와의 대조 속에서 파악한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 버크의 ‘미(美)’와 ‘숭고’의 구분을 계승한 칸트에 이르기까지, 미학적으로 해석되어 온 나름의 짧은 역사가 있었다. 버크에 따르면, “숭고의 지배적 원리”는 공포이며, 공포는 즉 ‘추론’의 힘을 앗아가는 강력한 감정으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결부된 자기 보존의 욕망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다[4]. 칸트에 따르면 “숭고한 것이란 그것과 비교할 때 다른 모든 것이 작은” 절대적으로 큰 것의 이념에 의해 생겨나며, 인간의 ‘종합적 표상능력’을 훨씬 능가함으로써 그 상상력을 위축시키는 것이다[5]. 즉 숭고를 탐구한 두 사상가에게 있어 숭고의 정념은, 항상 인간의 지성 작용이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발생하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프리드리히의 숭고에 대한 도취는 그의 시대에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귀결된 정치적 격변을 낳았던 계몽주의에 대한 이념적 반작용 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을 세계관의 중심에 설정하고, 실험과 실증의 방법을 통해 그 어떤 도그마에도 구애받지 않고 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자연을 다루었던 계몽주의의 이념 아래에서, 프리드리히가 보여준 것과 같은 자연의 숭고함은 있을 수 없었다. 인지적으로 완벽히 장악된 명징한 대상에서 숭고함을 느낄 수는 없는 이치이다. 버크가 숭고의 지배적 원리인 공포는 추론의 힘을 앗아간다고 말했듯, 얼마간 지적 이해를 유보함으로써만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숭고의 정념이다. 숭고의 이념을 정치적 모범으로까지 생각한 에드먼드 버크[6]가 계몽주의의 결실인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열렬한 비판자였으며, 프리드리히 역시 반계몽•반혁명의 기치 아래 활동한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멤버였다는 사실은 그저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이다.
문예 비평가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버크에게 ”사회생활은 토대와 기원을 알 수 없는 재현의 무한 연쇄”[7]다. 버크는 “연쇄의 무한과 연쇄 각각이 상정하는 동일성”[8]을 보존함으로써 실체를 알 수 없는 사회의 기원을 획득하고, 기원적 자연으로부터 관습의 합법성을 찾아내고자 했으며, 급진적 변화에 대한 그의 완강한 거부는 이런 태도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미지의 자연에 대한 버크의 이같은 모종의 신비화는, 낭만주의자 프리드리히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닮았다.
마침 프리드리히가 19세가 될 때 즈음인 1793년은, 버크의 프랑스 혁명 비판서 인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해이기도 했다[9]. 프랑스 대혁명은 구 질서를 보전하기 위해 혁명의 전복을 기도하는 내외 세력의 반동과 더불어 폭력적인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이런 가운데 독일의 지식인들은 잡지나 신문 따위의 지면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며 혁명에 대한 위협감을 하나의 사상적 흐름, 운동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낭만주의란 그 산물로서, 기실 프랑스 혁명에 대항해 ‘독일적’ 가치를 보호하고 통합하려는 정치적 활동이었다[10].
프리드리히가 1808년 이래 아른트와 같은 애국적 민족주의자들과 깊은 친교를 맺었다는 사실[11] 역시 그의 정치적 성격을 짐작케 한다. 버크에게 그랬듯, 프리드리히에게도 자연은 단순히 종교적이고 신비스러운 낭만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적 이념이 지향하는 이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이후 그가 독일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프랑스 패잔병의 모습을 그린 <숲 속의 사냥꾼>을 출품한 사실이나, 조국의 배신자들의 그림을 계획했다가 포기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는 사실[12]에서 그의 회화 작업의 정치적 동기를 읽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등을 돌린 인물이 화면의 중앙에 부각되는 <방랑자>의 이례적인 성격은 기실, 그 표현의 수위는 다를지언정 반계몽주의와 독일 민족주의의 이념적 표현이라는 프리드리히 회화들의 주요 테마와 같은 계열 안에 있음 을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방랑자는 계몽주의가 추동한 혁명과 물질문화의 진보라는 역사적 흐름에 반항하고자 했던 프리드리히의 이념이 투영된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그의 사후 그 그림이 나치 극우 민족주의의 찬양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한때 그의 그림에 덧씌워졌던 정치적 혐의를 두고, 그저 그를 이용하려 한 나치에 의해 억울하게 얼룩진 이미지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썩 정직한 사실 인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프리드리히의 그림이 그 작자가 저지르지도 않은 반인륜적 범죄에 연루되어 매도당할 필요는 없지만, 그를 옹호하기 위해 기어코 프리드리히의 대자연에 대한 흠모는 순결한 것이었노라 말하는 것 역시, 그 그림의 진가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게 할 뿐인 것은 매한가지다.
본디 정치적이었던 그의 그림을 그 시대적 맥락에서 정치적으로 읽어주는 것이야말로, 그에 대한 정확한 복원이다.
<인용 및 참고 문헌>
1) 이화진, “C.D.프리드리히(C.D.Friedrich)의 풍경화에 나타난 공간 구성 연구”,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제22집 (2004), p.92; 이유리, “그림으로 독일을 대변하다, 프리드리히의 <산속의 십자가>”, 『매일노동뉴스』2017년 5월, http://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 xno=144500.
2) 변기숙, “독일 낭만주의 철학이 회화의 미친 영향 –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eidrich) 작품을 중심으로”, 『유럽문화예술학회논집』, 제3집 (2011), pp.34-35
3) J.L.Koerner, Caspar David Friedrich and the Subject of Landscape (London: Reaktion Books, 2009), pp.210-211
4)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김민수, “숭고와 자기보존의 미학 탐구”, 『범한철학』, 제88집 (2018), p.267에서 재인용)
5) 임마뉴엘 칸트, 『판단력 비판』(안성찬, “숭고의 미학:그 기원과 개념사 연구”, 문학박사학위논문, 서강대학교, 2001, p.95에서 재인용)
6) 유경훈, “울스턴크래프트와 버크—프랑스대혁명과 계몽 논쟁”, 『영어영문학21』, 제26권
7) T.Eagleton, The Ideology of Aesthetic, (Oxford: Blackwell, 1990) (유경훈, 같은 글, p.155에서 재인용)
8) 유경훈, 같은 글, p.155
10) 김인혜,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회화이념”,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제18집 (2002), p.57
11) 김인혜, 같은 글, PP.57-58
12) 이화진, 같은 글, p.84
13) 이화진, 같은 글, pp.84-85
[그림으로 세상읽기] 안개바다 넘어 무엇이 보이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1818·캔버스에 유채·94.5×74.8㎝) ⓒ 함부르크 미술관
때로는 뒷모습이 더 많은 의미를 전하기도 하는 법. 바위산 꼭대기에 우뚝 선 남자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산 정상에서 불고 있는 세찬 바람에 그의 짧은 금발이 흩날린다. 발 아래로 보이는 안개는 거센 파도처럼 하얗게 부서지며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듯 호기롭게 시각적 쾌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망망대해 같은 안개바다를 바라보며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는 지금 상당히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는 듯하다. 동양의 선비처럼 자연을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분명 느낌이 다르다.
동양에서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을 바탕으로 서양보다 먼저 자연을 소재로 산수화(山水畵)를 그려왔다. 서양에서는 17세기가 돼서야 풍경화가 하나의 장르로 인정을 받지만, 동양에서는 이보다 훨씬 앞선 6세기경부터 산수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삶은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며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자연합일(自然合一) 사상이 모든 사고의 기저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여백(餘白)의 미는 동양미학에서 공간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비어있음’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꽉 찬 존재감을 드러낸다. 산수화에서 안개와 구름은 여백의 미를 통해 작가의 기량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장치다. 이는 감상자에게 심리적 해방감을 불러와 좁은 화폭을 벗어나 시야를 탁 트이게 확장시켜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산은 더 높아지고 골짜기는 더 깊어지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산수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개미 같이 작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신비롭고 푸근한 운무(雲霧)에 둘러싸인 거대한 자연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경외감을 느끼게 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다가도, 그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유유자적 하게 사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어지럽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초상(왼쪽) 동료 화가 게르하르트 폰 퀴겔겐의 그림,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의 부분
하지만 이 그림은 동양의 그것과는 다르게 자연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서양의 자연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연은 그저 인간을 둘러싼 배경일 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주변 세상을 변화시킬 주체라는 사고방식이다.
결국 자연은 그 광활함과 변화무쌍으로 인해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의지로 인해 변화를 맞을 운명이라는 것을 화가의 붓끝을 통해 예고라도 하듯 말이다.
그러면 정작 이 그림을 통해 화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저 고독한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안개 너머에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가 꿈꾸는 이상세계일 것이다. 그렇기에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과 당당히 맞서고 있는 이 남자는 화가 자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요동치고 있는 안개의 바다는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독일 낭만주의 대표적인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1774~1840)가 살았던 19세기 초반 당시의 독일은 ‘빈 회의’ 이후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강압적인 정권 하에서 정치인은 물론 예술가들도 이른바 ‘카를스바트 선언’으로 모든 작품들이 검열을 받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마치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에 유신 통치에 방해가 되는 저항적 문화의 흐름인 청년문화의 확산 방지를 위해 대중문화와 예술을 억압했던 것과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 있다.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된 신성로마제국, 즉 독일의 운명이 빈 체제에 동참했던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열강의 손에 달려있었다. 게다가 유럽의 어느 나라도 독일의 통일을 원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프리드리히는 조국을 위해 나폴레옹 지배에 반대하는 독일의 민족주의 운동과 자유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남자가 입고 있는 짙은 녹색의 옷은 독일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적 이상을 이루기 위해 결성된 ‘부르셴샤프트’라는 독일의 애국적인 대학생 단체의 단복이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시대로의 혁명적 변화를 모색하는 그의 의지를 저 뒷모습의 남자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를 오마주 한 영화 포스터 (왼쪽)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화’의 포스터, 영화 ‘2012’의 포스터
유년 시절 프리드리히는 엄격한 루터파 교도였던 아버지에게 양육받았고, 불행하게도 뭉크처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비롯해 사랑하는 형제자매가 죽는 것을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을 많이 하면서 성장한다. ‘자연은 신의 계시’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인 그는 이를 바탕으로 자연에 숭고한 정신을 담아 자신만의 독특한 종교적 신념이 담긴 풍경화를 주로 제작했다.
미지의 세계와 같은 거친 세상에 홀로 던져졌으나 이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려는 강한 정신이 전 생애에 걸쳐 그의 작품에 녹아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제목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살다가 언제라도 훌훌 털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는 방랑자로 자신을 표현했다. 우리는 모두 지구를 다녀가는 여행자처럼 이 세상 잠깐 들렀다가 떠나는 방랑자가 아닌가.
이후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채로 지내다가 20세기에 들어와 그의 작품에서 실존주의적 고독을 찾아낸 이들에 의해 새롭게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엔 비로소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로 인정받으며 이 그림이 다시 주목 받게 된 것이다.
현재는 다양한 장르에서 이 작품을 ‘오마주’ 하면서 뉴미디어로 이미지가 재생산 되고 있다. 이 그림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뒷모습의 이 남자를 잊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뒷모습의 남자와 안개라니, 이 가을에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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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캔버스에 유체물감, 98.5× 75cm, 1818년경, 독일, 함부르크미술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 David Fridrich: 1774-1840)
박영택
필자 소개
성균관대대학원미술사전공, 전 금호미술관큐레이터, 현재 경기대학교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미술전시장 가는 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가족을 그리다> 등이 있다.
사람들은 자연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비로소 성찰한다. 반성한다. 그러니까 자연은 관조의 대상이자 심미적 공간인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정의 공간이기도 하다. 세속을 지우고 자연 앞에 섰을 때 더없이 상쾌한 감정은 왜 일어날까? 머리가 지옥일 때 차를 몰고 드디어 바다에 도착해 그 망망대해를 바라보았을 때 왜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핑 돌면서 가슴이 확 터져나가는 듯할까?동양의 산수화는 자연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림 속의 남자는 한결같이 산속 작은 집에서 책을 읽고 매화를 감상하며 흐르는 물을 내려다본다. 혹은 다리를 건너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를 기다린다. 그는 그렇게 공부하고 수양하며 도를 닦는다. 군자, 신선이 되고자 열망한다. 자연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동양화의 그 인물산수화가 떠오른다. 그림 속 남자는 분명 작가 자신이다. 얼굴을 보여 주던 기존의 자화상과 달리 이 그림은 뒷모습만을 보여준다. 사실 뒷모습은 앞모습에 비해 더 많은 얘기를 해주는 편이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표정과 생김새를 지운 체 오로지 차갑고 단호한, 침묵의 등이 역설적으로 문자화, 언어화 시킬 수 없는 말들을 발산한다.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등이 내는 말이 더 무섭다.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무한한 자연에 대한 경외, 거대한 산악과 광활한 바다에 대한 열정을 지닌 이들이 바로 낭만주의의 예술가들이었다. 낭만주의의 유토피아란 세계나 자연과 일체가 된 인간 존재의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프리드리히는 저 자연을 응시하면서 그것과 부단히 하나가 되는 어떤 상태를 열망하고 있나보다. 멋지다!생각해보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무엇일까를 질문하며 반성하는 행위이다. 그는 기존의 자신을 새삼 부정한다. “나는 내가 아니다”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진정한 삶을 꿈꾼다. 이게 사유하는 인간 존재의 특권이다. 고유한 자기만의 생을 꿈꾸는 이들은 오직 자신의 단독적인 삶에 대한 긍정, 그리고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자유에 대한 확신을 지닌 이들이다. 세계의 가치는 우리의 해석 속에 있다는 니체의 말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이 그림 속 주인공이 마치 초인의 이미지와도 유사하다.화가는 안개와 구름이 자욱한 자연풍경을 내려다본다. 그곳은 자신의 조국 땅, 독일의 자연이다. 민족주의적인 내음도 난다. 생각해보면 작가는 나폴레옹의 독일(1806년 드레스덴 정복)침공을 바라보면서 울분을 느꼈을 것이다. 후일 히틀러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좋아해 이를 나치 선전도구로 사용하곤 했다. 지금도 이 그림은 자주 패러디되고 있다.프리드리히는 항상 산책용 지팡이와 스케치 도구를 들고 숲으로 다니곤 했다고 한다. 그는 늘 혼자 고독하게 다니며 자연과의 밀회를 즐겼다.”지금의 나로 있기 위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몸을 맡겨 구름과 바위와 나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겠다. 자연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그에게 자연은 신성한 것이었다. 그 자연을 관조하고 소요하며 이를 그림으로 그리는 행위란 결국 도처에 임재 하는 창조주를 느끼고 창조의 생명력과 교감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동시에 그것은 자기 성찰과 관련된다. 그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자기 내면을 응시한다. 알다시피 프리드리히는 당시 일반적인 그림들과는 달리 단순히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것, 인간의 눈에 의해 감지된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그는 예술은 인간 내면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은 이다. 작가의 그림이란 결국 그가 믿고 의지 하는 도덕적. 종교적 가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예술가의 상상력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연주의적인 인상이 아니라 정신 안에서 공명하는 그림의 공간이 갖는 분위기였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림이 진정한 예술작품이 되려면 글자 그대로 ‘정신적으로 충만’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림 속 주인공, 작가는 옛 독일 의상을 입고 있다. 이 그림은 1818년 그가 카롤리네 봄머라는 여자와 결혼하던 해에 그려진 그림이다. 44세라는 늦은 나이에 25세의 젊은 여자와 결혼했다. 그의 오랜 독신생활방식을 결혼은 크게 바꾸어놓은 듯하다. 그는 사내는 아내가 있으면 우스꽝스러워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혼하자마자 얼마 후 산꼭대기에 올라가 다소 답답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닐까? 결혼을 왜 했을까? 왜 했을까? 하면서… 농담이다.가파르게 솟은 전경이 암반에서 돌출된 어두운 꼭대기에 한 남자가 뒷모습을 보이며 서 있다. 멋있는 장면이다. 작가는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의 바다 저쪽, 맑은 대기 속으로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기둥 들을 지나 멀리 산봉우리와 산맥을 차분히 응시하고 있다. 구름이 층을 이루고 안개가 바다처럼 깔려 있는 이 풍경은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 덧없이 스러지며 순환하는 영원하고 무한한 자연 현상을 고독하게 바라보는 작지만 커다란 인간 존재를 보여준다. 그것에서 ‘나’란 주체, 개체는 무의미해 보인다. 영원과 무한 속에서 유한한 인간 존재는 그만큼 슬프고 남루하다. 그러나 그는 저 신비스러운 자연 앞에서 세계에 대한 성찰과 자기 존재에 대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 꿀 것이다. 그는 새로운 존재가 환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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